조르바의 주름

2014년 12월 02일
조르바의 주름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저 보기만 해도 담배가 돋는, 예술이 발끝까지 스민 손님 하나가 휠체어를 타고 커피스트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마치 그림처럼 근사하게 주름이 잡혀 있었다. 조르바의 주름을 보고 “때가 끼어 있다”, 라는 표현을 했던가.
올때마다 싸인을 한 책이며 엽서 등을 건네던 그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더니, 돌아가셨단다.
병석에 누워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커피스트에 가보지 못하는구나” 하셨다는데….
그가 작고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강언니가 커피잔을 하나 들고 왔다.
“나 혼자 보면 뭐하냐, 여기서 같이 보면 더 좋지.” 한다.
언니가 사회 초년병이었을 때, 선생님 한분을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그가 준 선물이란다. 알고보니 그분이 바로 문지의 시인들 얼굴을 그려주시던, 무용평론가이자 시인이자 화가이신 김영태 선생님이다.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던 그 분 말이다.
“조그맣고 헐겁게 지나쳤던 선”들로 그림을 그리고, “구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글을 쓰던 그와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걸 그랬다. 얼굴 그림이라도 하나 그려달라 할 걸 그랬다. 이도 저도 아니면, 만날 때마다 최선으로 커피를 건네고 또 건넬 걸 그랬다. 삶은 유한하고, 추억은 커피잔에 스미고, 어김없이 첫눈은 나린다. 그가 서 있는 강화도 전등사 뒷산 소나무 아래에도 소복히 겨울이 올 터이다. 곁하여 오규원 시인과 두런 두런 싯구를 나누고 있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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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 글

조윤정 | 글쓰는 로스터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늘 글쓰기와 사람 사이의 소통에 관심을 두었다. 영국 Monmouth coffee company에서 커피를 시작했으며, 귀국하여 2003년 커피스트를 설립했다. 배우고 가르치며, 낯선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일상적 모험을 날마다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