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커피를 향한 일상의 모험

2014년 03월 18일
맛있는 커피를 향한 일상의 모험

커피를 만드는 일은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일이다.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다. 삶과 가까와지는 방법이다. 산지의 공기와 재배 과정에 대한 이해를 덧붙여, 생두를 고르고 가스의 양을 조절한다. 볶은 커피를 숙성시켜 적절한 굵기로 갈아 또르르 자연과 하나되어 커피를 내린다. 부풀어오르는 거품의 모양과 물줄기와 혼연일체가 된다. 나는 곧 자연이다. 사람과 커피와 인생이 하나처럼 만나는 일, 커피를 아는 과정이 그러하다.

맛있는 커피는 불편함이다. 편하기로 치면 맥심 한봉지면 충분하다. 그 맛을 최고로 여기며 불만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미 ‘맛’이라는 새로운 범주에 발을 들이밀었다면 과거로 맛의 정신을 회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새로운 세계, 맛을 위한 불편함에 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맛있는 카페를 찾아다니고, 콜롬비아와 과테말라 커피를 구분하고, 커피 볶는 도구들을 장만하고, 책들을 구입하고, 드립이며 에스프레소에 몰입한다. 끝도 없는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카페를 오픈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늘 받는 질문, 카페를 여는 데 어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나요? 초보자에겐 분명한 지침이 효과적이다. 몇 평에 얼마, 기계는 어떤 종류로 얼마, 혹은 두 세 가지의 경우의 수를 나열하여 이런 경우엔 얼마, 또 얼마 라는 식이다. 하지만 경험이 늘어갈 수록 그 어떤 것도 분명하고 단순하게 일컫지 못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나요? 그에 관한 대답도 마찬가지다. 한잔 150CC를 내리기 위해, 15그람의 커피를 말코닉 12에 분쇄하여 정수된 물 87도로 뜸을 30초 들이고, 그 다음 부풀어 오르면 동전 크기만큼의 원을 중심에서 바깥으로 1분 30초 안에 내린다. 명쾌하지 않은가? 수십년을 커피에 몰입한 고수는 자신의 커피에 걸맞는 추출 방법을 그때 그때 사용하는 사람이겠지만, 몇 년이 지나고 깨달음 하나, 또 하나, 그렇게 커피의 심장에 다가서고 있는 단계에서는 당췌 맛있는 커피를 어떻게 내려야 할 지 정의가 서지 않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커피가 매력있지, 도무지 앎의 중심안으로 다가서지지 않는 것, 이라고 말해도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방식으로 커피를 내린다면야 기본은 지키는 것이니 맛이 형편없이 나오진 않겠지만, 이내 더 맛있는 커피를 내려 감동받고 싶다는 강한 욕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깨달음의 중심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인가.

원칙이라는 것을 일단 짚고 넘어가보자. 커피를 직접 볶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시기에 추구하는 스타일로 요리해 먹는 것 만큼 최선은 없다. 하지만 기계를 사기 위해 금전을 사용해야 하고, 제대로 볶아 맛을 내는 때가 될때까지 도무지 기다릴 수 없겠다. 그렇다면 잘 볶는 커피집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그 주에 소비할 만큼의 커피를 구입한다. 구입시에는 가능한 분쇄된 커피를 사지 않는다. 그라인더를 사서 마시기 직전에 분쇄한다. 커피를 내리는 도구에 따라 분쇄 정도를 달리한다. 정확한 그람수를 재고 온도계를 사용하여 드립할 온도를 체크한다. 중간 중간 뜨거운 물을 보충하여 온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한다.

기본을 지켰다. 그렇다면 어떻게 최상의 맛으로 진보해 나갈 것인가? 커피는 맛의 변화곡선을 갖는 식품이다. 갓 볶은 후 내리면 가스가 충분히 빠져나가지 않아 깔깔하고 톡 쏘는 맛이 연출된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맛이 열려 최상의 상태로 진행되는데, 이는 와인과 다르지 않다. 커피스트 커피는 3일~1주일 정도가 가장 맛이 좋다. 물론 볶는 사람에 따라 이 또한 단언 할 수 없다. 맛이 빨리 사라지기도, 천천히 발현되기도 한다. 어쨋든 맛이 최고조에 이르면 그 다음엔 하향 곡선을 긋는다. 밋밋해지고 단순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매일 맛의 변화를 확인하는 일도 즐겁다.

그렇다면 어떻게 맛을 찾아갈 것인가?
“아무리 옳은 듯 보이는 의견이나 주장도 끊임없이 신진대사를 반복하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고를 수정하여 다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증오와 불신, 냉담, 탐욕, 폭력… 혹은 모든 의미에서의 불리한 조건과 장애가 존재하기에, 그것을 극복할 기회를 얻고, 강하게 단련되는 것처럼, 오래된 커피, 강배전된 커피, 갓 볶은 커피, 그 모든 변수들에 노출되어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맛의 스팩트럼에 대한 근육을 갖게 되는 것이다. 커피를 제어하고 통제 할 힘을 얻어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하고 온도만 변화시켜 본다. 80도 83도 86도 90도 93도 이렇게 온도를 변화시키면, 볶은 지 며칠이 지난 커피는 몇도로 내리면 어떤 맛이 살고 어떤 맛이 줄어드는지 확인하고 기록한다. 이런 방법으로 뜸들이기도, 분쇄정도도, 사용하는 커피의 양도 달리한다. 이 경험치들을 조합해가며 드립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조금씩 세워가는 것이다. 교만의 설사에 정신을 미약하게 하지 않도록, 진지하고 성실하게 드립의 세계에 몸을 내맡겨 보는 것이다. 드립을 하다보면 겪게 되는 정체감에 예민해져 도중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우여곡절을 건너 마지막까지 도달해보는 것, 근사하지 않은가.

 

 

 

Share

조윤정 글

조윤정 | 글쓰는 로스터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늘 글쓰기와 사람 사이의 소통에 관심을 두었다. 영국 Monmouth coffee company에서 커피를 시작했으며, 귀국하여 2003년 커피스트를 설립했다. 배우고 가르치며, 낯선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일상적 모험을 날마다 시도하고 있다.

댓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